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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16 조회수 : 287

안식년을 지내고 있었을 때의 일이 하나 생각납니다. 식사를 하고서 커피 한 잔을 우아하게 마신 다음, 설거지를 하다가 커피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 잔은 어느 지인이 직접 만들어서 제게 선물로 주신 것으로 무척 아끼는 커피 잔이었습니다. 깨진 커피 잔을 바라보면서 주의하지 못한 제 자신을 탓하면서 동시에 선물 주신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요. 

얼마 뒤의 일입니다. 제가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집에 신부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다가 선배 신부님께서 찻잔을 실수로 떨어뜨려서 깨진 것입니다. 이 찻잔 역시 제가 아끼는 것 중에 하나였지요. 이때 어떻게 했을까요? 신부님께 화를 내며 짜증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괜찮으세요?”라고 황급히 이야기하면서 다친 곳이 없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왜 제가 잔을 깼을 때와 행동이 다를까요?

깨진 잔보다 선배 신부님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때문에 내 자신이 잔을 깨뜨렸을 때에는 그 깨진 잔이 아깝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지요. 

누군가에 대해서 화가 날 때, 정말로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로 귀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화를 다른 쪽으로 옮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것에만 집중하면서 중요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랑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미워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기뻐할 수도 있고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지금의 내 상태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잘못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를 묻지요. 그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끊임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용서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깨끗하게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은 누구나 다 귀한 존재입니다. 그 귀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나의 이웃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용서하라는 것은 그 사람의 귀함을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이의 귀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귀함을 인정받아서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나의 이웃을 귀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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