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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27 조회수 : 327

하느님을 찾고, 또 그 하느님께 매달릴 때는 언제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째 질병이 있을 때, 둘째 인간관계가 힘들 때, 셋째는 경제적인 문제가 닥칠 때에 하느님을 찾고 또 그 하느님께 매달린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가시나요? 그런데 만약에 이런 문제가 없어진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기쁘게 살아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게 된다고 하지요. 그냥 세상 삶 안에서 자신의 만족만을 찾으면서 하느님을 잊고 삽니다. 그러다가 다시 위 3가지에 해당하는 고통과 시련이 찾으면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옆집에 사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 도움을 청합니다. 평소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었지요. 그런데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고, 길거리에서 자신을 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다시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우리어도 계속해서 사랑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당연하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에만 찾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전혀 모르는 분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 평상시에도 하느님을 찾고 또 함께 한다면 고통과 시련을 주는 문제들에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역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에만 하느님을 찾는다면, 하느님 뜻에 나를 맡기는 삶이 아니라 내 뜻에 하느님을 맞추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내 뜻만을 내세울 때에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얻기가 힘듭니다. 이 세상은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불행선언을 하시면서, 어떤 사람들이 불행한지를 말씀하시지요. 바로 위선자들이 가장 불행하다고 하면서 당신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겉으로는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뜻에 하느님을 맞추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내세우면서 정작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위선자의 삶이 바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버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만 함께 하는 하느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내 삶 전체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필요에 따라서 내 자신을 봉헌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움직이는 하느님 나라를 분명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을 떠올려 보십시오. 나는 과연 불행선언의 주인공일까요? 아니면 행복선언의 주인공일까요? 하느님과 얼마나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나의 위치가 결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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