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 있을 때, 한 유치부의 꼬마 아이가 마구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제가 때렸어요.”라면서 서럽게 웁니다. 때린 아이를 보니까 초등부 2학년 아이였습니다. 저는 2학년 아이에게 “동생인데 왜 때렸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치부이면서 저한테 반말을 하잖아요.”라고 대답하면서 울먹입니다. 나이 많은 자신에게 반말한 것이 잘못인데 왜 자신에게 잘못했다는 식을 다그쳐서 억울했나 봅니다. 그래서 유치부 아이에게 “형인데 반말을 하면 되니 안 되니?”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아이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들 반말하는데 왜 나는 반말하면 안 돼요?”
형이긴 하지만 다들 반말을 하니까 자기도 반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유치원생의 눈에서는 누구에게 존댓말을 하고, 또 누구에게는 반말을 해야 하는지 구분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지요.
아이는 보고 들은 대로 따라합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합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실수를 많이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순수함에서 나오는 실수를 사람들은 잘못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순간, 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안에서 각종 욕심이 커져갑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8)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우리일까요? 혹시 자신의 바람만을 들어주는 주님만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님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보이는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주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떤 사심을 가지고 주님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과 단순함으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 중에 남에서 죄로 실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냥 주님과 함께 함 그 자체로도 충분히 커다란 행복을 체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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