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 7월부터 시작했던 국내성지 111군데 순례를 지난 9월 말에 모두 마쳤습니다. 남들은 몇 년에 걸쳐서 마친다고 하지만, 제게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식사도 하지 않고 강행군으로 순례를 하다 보니 이렇게 빠른 기간에 성지순례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완주했다고 하자, 사람들이 제게 이런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신부님! 어떤 성지가 제일 좋아요? 물론 갑곶성지가 제일 좋다고 말씀하실 테니 갑곶성지 빼고서 말씀해주세요.”
어떤 곳이었을까? 성지로서 의미가 큰 곳일까요? 아니면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곳일까요? 그런 곳도 좋지만, 사실 가장 좋았던 곳은 순례자들을 위해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전담사제가 있어서 열심히 성지에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순교자 신심을 전해주고 있는 곳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성지는 대부분이 순교성지이기 때문에 다 비슷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과거 역사 안에서 보여주었던 순교자의 정신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드러내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통해서 분명해집니다. 어느 순교성지에서 “박해받고 잊혀지다.”라는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순교성지의 가치는 과거의 역사 자체에서가 아니라, 과거의 순교자를 기억하게 하면서 현재 어떻게 순교자의 의미를 드러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과거에 주님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분들을 기억하면서 지금 역시 주님의 말씀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단순히 과거 주님께서 하신 일회성의 말씀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 자기 아닌 남들을 향한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일회성이 아닌 영원한 말씀입니다. 또한 남을 향한 말씀이 아닌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더불어 또 다른 일꾼들이 나올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이 되어서 사는 삶, 그 삶의 자리가 바로 지금 시대의 또 다른 거룩한 주님의 성지를 만드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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