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반, 어느 본당신부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요즘에 아이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다 신부 탓이야. 조금만 관심을 주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아이에 대한 신부님의 관심이 커서인지 이 본당에는 많은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신부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의 말씀이 생각나서 “요즘에도 아이들이 성당에 많이 나오나요?”라고 물었지요. 그런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당에 아이들이 없어도 너무 없어. 학원에 가느라 성당도 나오지 않고, 또 성당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성당으로 이끌기가 정말로 힘드네.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어.”
신부님께서 관심을 거둬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과 똑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아이를 향한 큰 관심을 가지면서 나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아이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하십니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미리 읽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단순히 신부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단 하나의 문제점만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떠한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고 이러한 안이한 생각이 또 다른 실패만을 맞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포기 상태가 되지요. “사회가 원래 이래. 어쩔 수 없는 거야.” 등의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따라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혜는 다양한 각도로 문제의 해결을 살피고 이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곳에서 나옵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하게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된다고 해답을 말하지만, 이 사랑의 실천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십니다. 사제, 레위인은 강도를 만난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가지요. 그들이 사랑을 몰랐을까요? 율법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천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립니다. 난처한 이 순간을 피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 순간을 피하지 않고 최고의 사랑을 실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또 행동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순간을 모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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