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또 이렇게 노력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를 향해서는 ‘제발 잔소리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 안 일에 좀 충실했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잘 했으면 좋겠다.’ 등등, 또 남편을 향해서는 ‘술, 담배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안 일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놀아줬으면 좋겠다.’ 등등의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던가요? 이야기를 하면 잔소리로만 생각하고 있고,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청개구리 심보를 가지고 있어서 내 생각과는 일부로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요.
이러한 생각까지 이르게 되면 사랑에 의심을 품게 되지요. 자신이 선택했던 사랑인데도, 잘못된 사랑인 것 같다고 속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내 자신이 할 것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무조건 바꾸라고 할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나의 노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대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지금 모습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유리컵과 종이컵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컵은 종이컵과의 사랑이 오래갈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혹시라도 물이 담기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 같아서 아무것도 담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자신처럼 강도를 높이라고 요구합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당신이 먼저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와의 만남을 떠올려보십시오. 주님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이 모습에 사람들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하면서 투덜거립니다. 죄인들은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주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상대방이 변해야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당신이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자캐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나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다가서고 있었을까요? 혹시 무조건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야만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은 받아들이고 다가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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