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냐고, 사람들이 흉보지 않겠냐면서 늘 걱정합니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타인이 바라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
사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내 자신이 굳이 신경 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있는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그리고 스스로 있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책임도 지지 못할 자유를 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방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책임 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삶이야말로 참 행복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임지는 자유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종종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어느 것은 초점이 어긋나서 흐려지고, 반대로 초점이 잘 맞춰준 것은 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초점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데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흐려진 삶, 만족스럽지 않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 초점이 바로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게 될 때, 분명히 우리의 삶은 더욱 더 선명해지면서 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성인께서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진 성모님을 받아들이시지요. 율법을 따른다면 그의 처음 생각대로 파혼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꿈에 천사의 계시를 들을 수가 있었고, 천사의 말씀을 따라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요? 혹시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세상의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요셉 성인께서 보여주신 하느님께 철저히 초점을 맞추는 삶, 그것도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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