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3월 2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3-23 조회수 : 274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저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노래를 잘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나온 지가 꽤 오래된 노래를 신곡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음악을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음악을 들으면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듣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악과 멀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깜짝 놀랄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흐르는 것입니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저도 감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분명히 제 몸인데,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내 자신에 대해 무지하고 또 자기 자신과 서먹서먹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내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특히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오해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유명한 탕자의 비유입니다. 먼저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사실 히브리 문헌에서 상속재산을 미리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것으로 커다란 죄입니다. 작은 아들이 죄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계속 이어지는 이교도와 어울리고 타락한 행동을 하는 것, 돼지를 치는 것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죄를 더하면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던 작은 아들입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아버지께 돌아가지요. 그런데 여전히 완전히 뉘우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는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용서를 청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종이 품팔이꾼이 되겠다는 말은 쏙 빼고 용서를 청합니다. 

이런 아들이어도 그 아버지는 받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너그러움은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당신의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큰아들의 모습을 취합니다. 무조건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공평하다면서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오해하는 큰 아들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무조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집중해야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