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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3-24 조회수 : 259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아주 여윈 암소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집에 지혜로운 현자가 찾아갔습니다. 현자는 이 집을 한참 돌아보더니 제자에게 몰래 이 암소를 절벽으로 데리고 가서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스승의 말을 어길 수가 없어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제자는 한 동안 자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 마을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던 가족이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유를 물으니, 암소가 없어져서 필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묘목을 가꾸고 약초를 심어서 팔다보니 지금처럼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시도와 모험을 가로 막는 ‘야윈 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고정관념을 우리는 절벽에서 과감하게 떨어뜨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셨을까요? 혹시 “음... 오늘은 뭐 재미난 일이 없을까? 작고 웃긴 피조물들을 좀 만들어서 그것들이 뭘 하는지 지켜볼까?”라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지루하셔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진흙을 가지고 장난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레네오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베푸실 대상으로 우리를 지어 만드셨습니다.”

맞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이 땅 안에 당신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살고 있을까요? 또한 적극적으로 그분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나요?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기도를 외우고 전통과 예식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느님의 궁극적인 계획이 펼쳐지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밭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은유로 자주 쓰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역시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만 사랑 받기를, 자기들만 구원받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하느님 사랑이 이 땅에 열매 맺을 수가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라버리겠다고 하지요. 

우리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요? 단순히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단순히 미사 참석과 기도문을 외운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런 착각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나의 ‘야윈 암소’인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포도 재배인처럼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나를 막는 내 안의 야윈 암소를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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