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력이 강한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보다는 악을 선택하고, 미래의 안녕을 우선시하기보다는 현재의 쾌락을 추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자제력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쉬운 선택만 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올바른 행동이 따르는 선택을 하는 데는 많은 걸림돌이 따르기 때문에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쉬운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신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은 많지만,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셋째,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이지만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고통과 시련이 따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하느님께서는 나약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마라톤 선수들이 41Km에 이르면 속도가 더 빨라진다고 합니다. 너무 피곤하고 힘든 상황이어도 목표에 근접했다는 생각에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내 자신을 제대로 알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제력이 부족한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자제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쉬운 선택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간의 만족을 원하는 삶이 아닌,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이 작은 아들은 자제력이 부족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쉬운 선택을 위해서 아버지에게 미리 유산을 달라고 청하지요. 그리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낭비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아버지였습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를 찾아가서 용서를 청합니다. 사실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유산을 청하는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왜냐하면 유산은 돌아가신 부모에게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계신 부모에게 유산을 청하는 것은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였기에 그는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달라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결과는 어떠했나요? 큰 죄를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기쁘게 맞이하며 잔치까지 벌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개 숙여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용서를 청하는 우리를 무조건 받아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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