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내 몸이니까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를 하겠지만, 실제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저 역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한때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즉, 내 몸이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알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늘 궁금했던 어떤 학자가 연구를 했습니다. 자신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바로 가장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값이 곧 자신의 모습이라고 발표를 합니다. 그 이유를 우리 뇌의 특징을 들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뇌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자기 자신과 동일 인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동이나 습관을 결정하는데 ‘진짜 자신’의 주관은 1/6밖에 작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 주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할 것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은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내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주님을 가까이할수록 우리의 모습도 주님과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하면서 나의 행동이나 습관은 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며,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이 세상 전체가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주님과 가까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이루어주시길 청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도 그러했습니다. 단순히 안식일 법에만 집착해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고,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예수님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느님 아드님을 감히 인간이 심판하고 단죄하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함께 해야 할 분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또 가까이하지 못하는 이유만을 계속해서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 앞에서 우리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을 똑바로 보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주님 안에서 참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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