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가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연을 읽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늘 강조하던 부모님 밑에서 힘들어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했고, 드디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입니다.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됐어?
공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라는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아픔에 대해서도 공감을 해 봅니다. 아마 이 아이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사랑을 원했을 것입니다. 1등을 해야지만 좋아해주는 사랑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칭찬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랑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니 미움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복수하겠다는 마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정말로 복수가 된 것일까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이었을까요? 이 정도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를 비롯해서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긴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어떤 고통과 시련이 다가왔을 때에는 이를 극복할 미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지는 않고 어두운 지금에만 머무르고 있으니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겠지요.
미움의 감정, 복수의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아픔을 주게 됩니다. 즉,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들이 이런 감정을 가졌던 이유는 예수님이 너무나 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인들과 어울리고 병자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 위선자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그들은 죽이겠다는 마음까지 품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마음에 주님께서 맞추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긴 미움의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주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다니면서도 미움의 감정을 지니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죽이려했던 유다인들은 주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이 사회를 혼란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따르는 사람은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뻐했고 행복했습니다.
우리도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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