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부들 모임에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서 장사를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의 금술이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이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던 한 형제님께서 묻습니다.
“함께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 함께하면서 싸우지 않으세요?”
이에 “저희는 거의 싸우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전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지요. ‘금술이 좋아 보이는 이 부부도 역시 싸우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셨던 형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럽네요.”
자기 부부는 툭 하면 싸운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싸우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하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하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면서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그래서 싸우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싸울 때의 이유들을 듣다보면 배우자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연애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한결같은 모습, 한결같은 사랑을 원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바로 갈등과 다툼의 원인은 한결같지 못함에 있었습니다. 이는 부부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한결같지 못함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너 때문이야. 네가 잘못이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상대방의 한결같음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결같음은 상대방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도 이 한결같음을 간직하고 상대방에게 다가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하느님 앞에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큰 죄를 범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율법에서는 간음한 현행범을 남자와 여자 둘 다 돌로 쳐 죽이게 하였지요. 그런데 간음한 여인만을 데리고 와서는 죽여야 한다고 고발합니다. 분명히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느님 앞에 한결같지 않다고 이 여인을 고발했지만, 자신들 역시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한결같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둘씩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죄하려면 자신이 먼저 한결같이 깨끗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에 대한 재판관이 될 수 없습니다. 대신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죄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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