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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08 조회수 : 302

언젠가 어떤 분이 제게 예쁜 화초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화초를 받았을 때 실망의 표정을 제가 지었나 봅니다. 이 분께서는 당황하시며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으시더군요. 사실 이제까지 많은 화초를 키우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화초 선물을 받으면 괜히 부담이 되고 긴장이 됩니다. 이런 제 마음이 아마 그분에게 전해졌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제가 화초를 키우면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되네요.”

이 말에 그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화초 키우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화초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사랑한다는 것’에서 이렇게 전해줍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꽃에 물주기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는 꽃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일이다. 적극적인 배려가 없는 곳에 사랑은 없다.”

우리는 단순히 말로만 사랑한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께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주님의 뜻에 함께 하는 모습이 있어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당시의 종교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란 어쩌면 율법 자체에 대한 것에만 그쳤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에도 그들은 사랑을 강조하시고 그 사랑을 직접 실천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주님이 전혀 물리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하고 미워하고 단죄합니다. 하느님을 진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며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만이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는데,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기에 이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혹시 입으로만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면서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어둠 속에서만 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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