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감은 언제 생길까요? 많은 이들은 상대방과 좋아하는 것이 같을 때 생긴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좋아하는 것이 같아지면 금방 헤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뻔하다’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좋아하는 것이 다를 때 친밀감이 생기는 것일까요? 이 역시도 아닙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만 주장하다가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친밀감은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요?
친밀감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이해해 줄 때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감을 통해 친밀감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이해를 해주니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겠습니까?
어떤 부부가 “우리는 너무 달라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것까지 서로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얼굴이 완전히 비슷한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남남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는데 어떻게 좋아하는 것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 같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싸우고 다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감과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타인의 공감과 지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가 먼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공감하고 지지해줄 때 친밀감이 쌓이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원했던 모습과 다르게 말씀하고 행동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반해서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습들, 즉 사랑에 반대되는 모습들을 따르지 않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부활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숨기려고만 노력했고, 헛된 소문을 일으켜서 끝까지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으니 이들 앞에 당신의 부활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공감과 지지는 내 이웃에 대한 공감과 지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고 우리들이 따르기를 간절하게 원하셨던 사랑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화합과 일치의 삶이 아닌 분열과 다툼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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