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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273

쉽게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거의 같은 공통점은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사람들 앞에서 강의했을 때가 떠올려집니다. 어느 본당에서의 견진 특강이었는데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모릅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이 쿵탕쿵탕 뛰고 다리가 저절로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는 것입니다. 

강의 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더욱 더 커져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강의 내용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벌벌 떨면 어쩌나... 사람들이 비난하면 어쩌나... 등등 불안의 이유를 스스로 만들면서 힘들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강의 내용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어떤 심리학자는 “내 불안의 80%는 불안해하는 나라는 존재를 불안해하는데 비롯된다.”라는 말을 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두려움 외에 두려워할 것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내 자신이 두려울 뿐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강의 내용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고 이에 집중을 하면 보다 더 올바르게 살 수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만을 바라만 보고 있으니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미리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 더군다나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나면 육체의 부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제 완전히 ‘죽었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불안과 절망 안에서 힘들어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던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죽음 자체에만 머무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정원지기로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지가 한참 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겠지만,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부활을 알아보는 눈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주님의 시신에만, 즉 주님의 죽음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은 부활 신앙입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에 집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할 때, 우리들 역시 지금 삶 안에서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극복하고 대신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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