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이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면 피곤함을 많이 느끼고 되었고 더불어 때로는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면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운전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의 차를 얻어 탄 적이 있습니다. 운전을 힘든 일로 생각하는 저와는 달리 운전이 매우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카레이서처럼 속도를 즐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안전 운전을 하면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나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이 분의 말씀이 계속해서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운전을 힘들게 생각했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운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 가는 것이 중요했고, 그 과정 안에서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차가 싫었고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가는 차가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또한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뒤에 목적지가 아닌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자체를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유가 생깁니다. 급하게 끼어드는 차를 향해서는 ‘저 차는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급할까? 화살기도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운전이 힘들지 않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과정이 모여서 결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들 안에서 만나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를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삶이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체험한 예수님 부활 소식도 믿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미리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들었던 제자들이 왜 믿지 못했을까요? 바로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죽음에만 머물러 있으니 불신과 완고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며, 다락방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결과에만 갇혀 있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이제까지의 모든 과정을 바라봤던 것을 기억하면서 부활의 삶,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신나게 따랐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결과에만 갇혀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과정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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