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하다보면 종종 환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 보는 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저의 질문에 답을 해주시고 심지어 제가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저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릅니다. 어쩌면 평생 다시 만나는 인연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세속적으로 어떤 특별한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왜 이런 친절과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주는 것일까요?
이렇게 받은 것이 많기 때문에 저 역시 여행 안에서 얻게 된 친절과 배려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성지에 오신 분들에게 최대한 친절히 대하게 되고 또 배려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버스를 타서 버스 요금을 내려고 하는데 글쎄 지갑이 없는 것입니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느라 지갑을 놔두고 온 것이었지요. 아주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당황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대신 버스 요금을 내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돌아가서 버스 요금을 보내드리겠다면서 연락처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버스 요금을 돌려줄 필요 없어요. 대신 나중에 당신처럼 곤란해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베풀어 주세요.”
이렇게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만들며,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이 세상에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받은 것이 없다고 외면한다면 또한 언제 다시 보겠냐면서 무시한다면, 이 세상 안에 나눔이나 사랑과 같은 주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치가 세상에 펼쳐질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 제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자신들 역시 예수님처럼 비참한 십자가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겠지만,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마음에서 오는 두려움도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싶고,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토마스의 모습도 이해가 됩니다. 너무나 죄송하고 두려웠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누가 나를 믿지 않고 배신을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좋은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면서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께서 직접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세상 안에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가득 찬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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