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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11 조회수 : 297

어느 아들이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왜 가기 싫으냐고 물었고, 아들은 학교 가기 싫은 이유가 세 가지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요. 둘째, 아이들이 나를 괴롭혀요. 셋째, 학교가 너무 싫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가 학교 가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 말해보마.”라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학교 가는 것은 너의 의무이다. 둘째, 아이들이 너를 괴롭히는 것은 아이이니까 당연하다. 셋째, 너는 학교 교장이다.”

아들은 학교에 가야할까요? 가지 말아야 할까요? 당연히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학교 교장 선생님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어른인 아들은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해도 학교에 갔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고, 또한 아이들이 교장인 자신에게 괴로운 문제들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교장이라는 직책에서 오는 책임감 때문에 학교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에게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사실 어른이라고 해서 위로받고 싶지 않을까요?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자기 안에 아이가 늘 있습니다. 위로 받고 토닥거림을 받고 싶어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직 육체적으로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만을 아끼고 보살펴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르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을 보살펴주실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당신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단 한 명도 예외 없는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즉, 모두와 함께 하시는 주님,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주님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또한 자기 뜻대로 해주시지 않는다면서 거부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지요. 제자라고 하면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과 함께 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조차 주님을 거부하면서 떠날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시고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기억하고 우리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을 떠날 이유를 찾지 말고, 주님과 함께 할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그 안에서 큰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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