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돈보스코 성인의 3대 후계자인 필립보 리날디 신부님(1856~1931)의 전기「사랑에 강요되어」 (피에트로 리날디 저, 돈보스코 미디어)를 읽고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리날디 신부님과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목소리로 이렇게 증언했더군요.
"정말이지 저는 단 한번도 그분을 윗사람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제 행복을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않는 제 친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수도생활은 아기자기하고 화목한 가정생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 출신의 나이 많은 요한이라는 신학생이 자신의 지적 무능력을 한탄하며
리날디 신부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결코 훌륭한 사제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신학생이 겪고 있던 고초뿐만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던 많은 잠재력과 열정을 파악하고 있던 리날디 신부님은 그의 지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이렇게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요한, 중앙 제대 위 초들을 본적이 있는가?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지. 하지만 모든 초가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 거기 서있는 것이라네.
사실 짧은 초가 긴 초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있다네.
동트기 전에 미사를 드릴 때, 긴 초들은 사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네.
반면에 짧은 초는 사제가 미사경본을 읽은 데 아주 큰 도움을 주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네.
교회는 낮은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키 작은' 사제들을 더 필요로 한다네.
자네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될 거야."
리날디 신부님의 진한 부성애와 잔잔한 위로에 크게 감동을 받은 요한 신학생은 다시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는 후에 브라질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인디언들의 사도이자 또 다른 따뜻한 아버지로 살다가 그곳에 뼈를 묻게 됩니다.
저희 수도회에서 거의 성인(聖人)급으로 분류되는 할아버지 선교사 신부님께서 내한하셔서 잠시 동행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인들 특징 중에 하나가 살아계실 때 이미 성성(聖性)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확연한 성성(聖性)을 신자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리더군요.
그래서인지 신부님 주변에는 잠시도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여듭니다.
연세가 꽤 드셨음에도 언제나 인기가 절정입니다.
정녕 신부님은 신자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사목자요, 모든 사람들의 연인이셨습니다.
오늘 성소주일을 맞아서 제 머릿속에 몇몇 선배 신부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저 같이 '덜 떨어진' 사제는 그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심각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착한 목자로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친절한 모습,
어린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환한 미소, 세심한 배려, 인자함, 따뜻함, 섬세함, 편안함, 극진한 환대….
그 모든 덕행들을 종합하면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제 개인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온유와 겸손'.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하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때로 냉정함도 필요합니다.
더 큰 선(善)을 위해서 끊고 맺음도 필요합니다.
따끔한 매도 필요합니다.
엄격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한 인간을 변화시키고, 감화시키고, 회심시키는 것은
결국 부드러움이었습니다.
착한 목자로서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부성애더군요.
결국 온유와 겸손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부드러움이 인류를 구원합니다.
"주님, 오늘 저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존재 그 자체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목자,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구원의 향기를 퍼트리는 목자, 실의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양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목자, 그래서 삶의 이정표를 잃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새 출발 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그런 착한 목자들을 보내주십시오."
세상의 모든 사제들이 주님의 집에 피어난 푸르른 올리브처럼 순결한 착한 목자, 언제나 주님 자비에 의탁하는 겸손한 착한 목자, 아무리 짓눌려도 결코 찌부러지지 않는 강건한 착한 목자, 갖은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힘차게 일어서는 착한 목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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