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인천 신학교에서 대학원 2학년 학생들에게 설교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부제서품을 받아 성직자가 될 신학생들에게 강론과 강의 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스스로에게 ‘설교학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지만, 저 역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저의 강의 후에 신학생들의 강론 연습 시간을 갖습니다. 직접 강론도 해보고, 또 그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강론 시간이 짧은 것입니다. 분명히 더 길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서둘러 강론을 마치면서 5분을 넘기지 않더군요. 그래서 왜 이렇게 강론을 짧게 하느냐고 묻자, 대부분의 본당 신부님께서 5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법 어디에도 그런 조항이 없습니다. 또한 많은 설교 관련 서적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신부님들께서는 신자들이 원한다는 이유를 말하고 있지만, 과연 5분 이내에 주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 지가 의문입니다. 신자들을 위한다는 이유이지만 오히려 신자들에게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강론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 삶 안에서는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편하고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어렵고 힘든 길도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쉽고 편한 길이 우리의 정해진 길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생활을 마치시고 다시 하느님의 높으신 자리로 현양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순간에서도 주님께서는 강복을 주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이 모습에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냅니다.
사실 이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 큰 아픔과 상처의 땅이었지요. 스승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있었던 것, 자신들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곳, 그래서 벌벌 떨면서 숨어 있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오히려 기뻐하며 찬미하는 공간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닌,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따르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그 안에 과연 주님께서 함께 하실까요? 자신의 뜻만이 들어있는 편하고 쉬운 길 안에서는 결코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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