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둔다.’는 문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에 오랫동안 머물게 됩니다. 우선 곁이란 겨드랑이 사이를 뜻합니다. 즉, 곁에 둔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이에 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허물이 있다면 과연 가능할까요? 충복으로 내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허물이 없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내 곁에 두는 사람은 얼마나 있나요?
사실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내 곁에 그냥 머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 자신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내 자신이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지만 가능합니다.
어떤 분의 이런 고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따돌리면서 근처에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사람이 사람을 따돌리는 잘못된 모습을 보일까요? 물론 따돌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낸 이 분에게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분의 평소 모습은 사람들이 다가서기에 그렇게 쉽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자그마한 일에도 화를 많이 내는 등 늘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자주 했던 것이지요.
이런 사람 곁에 누가 다가서기를 좋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반대의 모습인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떨까요? 내 곁에 오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내 곁에 머무르기 위해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 곁에 머무르려고 노력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먼저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셨고, 가장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주님 곁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당신의 모습을 따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이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지니지 말 것이고, 제일 먼저 평화를 빌면서 인사하라고 하십니다. 세속적인 욕심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주님의 평화를 나누는 모습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 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 안에서 우리 곁에도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려고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곁에 머무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 안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곁에 다가오는 것만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보다 먼저 주님 곁에 머무르면서 주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선포가 가장 힘 있게 사람들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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