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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11 조회수 : 358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마태오 10,7-13 
 
<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 바르나바 사도! > 

예루살렘에 본산을 두고 있었던 그리스도교 모공동체이자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최초로 정착되기 시작한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큰 관심, 즉 기도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교회는 신생 안티오키아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독 한 명을 임명했는데, 그가 곧 바르나바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으며, 바르나바는 별명입니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용기를 고취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그는 키프로스 출신이고, 직업은 레위계 성직자였습니다.
금수저 가문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금싸라기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수려한 용모에 탄탄한 학문, 깊은 신앙 등, 그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당시의 대세남이었습니다.
원래 바르나바는 열두 사도의 일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두번씩이나 사도라는 호칭으로 기록될만큼, 교우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모두 팔아 사도들에게 갖다바쳤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그는 초대교회의 한 멤버로서 날개를 달고 열심히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큰 업적 중에 하나는 예루살렘 모 교회 공동체로부터 홀대받고 의기소침해 있었으며, 곤경 중에 처해있던 바오로 사도를 찾아간 일입니다.  
 
바르나바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르소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갔습니다. 
바르나바는 긴장 관계에 놓여있던 예루살렘 모교회 공동체와 바오로 사도 사이를 
부드럽게 중재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만 1년 동안 의기투합했습니다. 
두분의 합심 결과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는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신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교회 공동체 조직도 안정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노력으로 첫번째 해외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고,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바오로 라는 큰 인재를 알아봤고 지지한 것이 아닐까요?  
 
바르나바 사도는 지금은 비록 곤경 중에 처해 있지만, 바오로야 말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서 적임자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갔고, 용기를 불어넣고 격려했으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또한 바르나바 사도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유다 세계를 넘어 이방인 세계로 문호가 활짝 개방될 수 있도록 바오로 사도와 함께 완고했던 예루살렘 모 교회 공동체를 설득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가 이 모든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착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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