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노자는 《도덕경》 42장에서 우주 만물이 생겨나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도(道)에서 하나(一)가 생겨나고, 하나(一)에서 둘(二)이 생겨나며, 둘(二)에서 셋(三)이 생겨나고, 셋(三)에서 만물이 생겨난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여기에서 ‘도’(道)는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원리입니다. 이 ‘도’(道)에서부터 세상의 시원(始原)이 되는 커다란 하나의 우주(태일[太一], 태허[太虛])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하나(一)입니다. 그다음으로 커다란 하나의 우주가 두 개의 커다란 기운인 음(陰)과 양(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것이 둘(二)입니다.
그런데 우주에 존재하는 음과 양, 두 기운이 꽉 차 있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음과 양 두 기운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둘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로 비어있는 공간으로 채워 들어가 움직임으로써 비로소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순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양의 순환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노자는 음과 양의 기운 사이에 비어있는 이 공간을 충기(冲氣)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음기와 양기 그리고 충기가 모여서 셋(三)을 이루게 되고, 이 셋에서 우주 만물이 생겨납니다. 노자는 충기(冲氣)의 비어있는 공간이 이루는 작용을 조화(和)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양의 조화는 이렇듯 셋이 모여 조화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이루시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성부, 성자, 성령’이 위격으로는 셋을 이루고 계시지만 그 본체는 하나임을 믿는 신앙의 교리입니다. 교회는 역사 안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비유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기에, 한 분이신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모습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조화롭게 섭리하시는 사랑의 신비는 비단 우리 인간들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감싸는 질서입니다. 마치도 음양의 조화로운 질서를 통해 우주 만물의 생성과 운행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노자의 사상과도 같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의 신비는 우리 교회가 이해하고 설명하며 믿고 따르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진리의 영이 오시어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기운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 안에서 사랑의 힘으로 생명을 키워내시는 성령의 이끄심이 곧 섭리이고 진리이며 질서가 아닐는지 조용히 묵상해봅니다.
글 이근덕 헨리코 신부(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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