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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24 조회수 : 313

갑곶성지에서는 미사 한 시간 전부터 고해성사를 줍니다. 하느님과의 화해를 위한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곶성지에 부임하자마자 미사 전 30분이 아닌 1시간으로 시간을 늘렸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 문구를 고해소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꽤 많은 분들이 일찍 오셔서 고해성사를 보십니다. 물론 시간적 제약 없이 고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사 전 20분까지는 최대한 많은 말씀을 하실 수 있도록 하고, 그 이후는 빨리 진행을 합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분이 일찍 들어오셔서 저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분의 아픔과 어려움을 듣고 또 질문도 하면서 조금 길게 고해성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밖에서 고해소 문을 신경질 적으로 세게 두드리는 것입니다. 고해 중이라는 표시가 문밖에 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안을 볼 수 있는 유리문이 있어서 고해성사 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문을 두드린 것일까요?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빨리 끝내달라는 표시였던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서 그분께서는 “너무 길게 말했나 봐요. 그만해야겠어요.”라면서 마음을 접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분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고해성사를 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하겠지만, 안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분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합리적이라고 또한 정의에 맞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요. 이 과정 안에서 남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입장은 어떻게 고려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세례자 요한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 불가능하다면서 의심을 했었지요. 하느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까? 바로 세례자 요한의 이름을 지을 때, 하느님의 입장을 받아들였을 때였습니다. 

주인공 세례자 요한은 늘 하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실 주님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주님의 자리를 잘 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주님으로 인정받아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입장만 내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하느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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