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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27 조회수 : 273

지난 번 사제연수 때에 친한 후배 신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구청에 있을 때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또 술도 했던 후배 신부지요. 그러나 제가 강화도에 있는 갑곶성지에 오고 나서는 인천과 강화라는 거리 때문인지 자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연락 좀 하면서 살자.”

후배 신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형님! 바쁘다 보니 연락도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 조만간 한 번 찾아갈게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내가 먼저 연락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내게 연락하길 바라면서 정작 내 자신은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주고받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 즉,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함을 후배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이렇게 받는 것에 집중하게 될 때 주고받음의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자신이 먼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주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공감하고, 지지하고, 배려하는 마음 역시 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무조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고받음의 인간관계는 튼튼하게 유지될 수가 있습니다.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묵상해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나만 잘 사는 삶,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삶,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모두 망하는 삶 등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통해서 직접 보여주신 사랑의 삶입니다. 내가 받을 사랑만을 떠올리며 사는 삶이 아닌, 내가 줄 사랑을 떠올리며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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