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 사랑의 독설(毒舌) >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가끔씩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아예 바닥인 아이들, 근본적으로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차라리 화가 나지 않습니다.
마음 크게 먹고 어느 정도 포기합니다.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뺀질거리는 아이들,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잘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정없이 야단도 칩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노하고, 질책하고, 매를 들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짠한 마음, 애끓는 마음, 결국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더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매를 드십니다.
더 애착이 가는 사람일수록 더 요구도 많이 하시고, 질책도 자주 하십니다.
사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다른 도시보다 훨씬 컸습니다.
가능성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기간 동안 더 자주 그 도시들을 찾아가셨고, 다른 곳에서보다 더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 사람들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끝까지 귀를 막습니다.
굳어질 대로 굳어진 그들, 너무나 완고해진 그들이었기에 결국 예수님께서도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우셨던 예수님께서는 애끓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독설과도 같은 저주의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이 말을 듣고 돌아서지나 않을까, 하는 마지막 기대를 안고 던지시는 사랑의 독설(毒舌)인 것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오늘 역시 우리 각자를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묵상하며 또 다른 회개의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 무엇에 앞서 ‘구체성’입니다.
제대로 된 회개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뒤따라야 합니다.
마음만의 회개, 생각만의 회개, 계획서만의 회개, 그거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적인 삶의 변화는 언제나 어려운 것입니다.
회개를 위한 결연한 의지,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목숨조차 걸어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에는 일상성이 필요합니다.
회개는 대죄를 지은 사람이 일생에 한번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매일 매 순간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저녁기도를 바치는 순간, 우리는 오후 동안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아침기도를 바칠 때면 그 전날 밤 부족했던 부분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낮 기도를 바칠 때면 오전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 온 종일이 회개의 반복이어야 합니다.
결국 시시각각 쉽게 흐트러지고 마는 우리의 불안정한 삶을 하느님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노력이 회개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얼굴에 우리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이 회개입니다.
작은 자아를 버리고 큰 강물이신 하느님 자비의 품으로 부단히 나아가는 노력이 회개입니다.
놓으면 죽을 것만 같아 기를 쓰고 붙들고 있는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그 무엇들’을 과감히 놓아버리고 하느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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