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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25 조회수 : 296

많은 분들이 이런 기도를 바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 그들을 변화시켜 주세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그들을 깨우쳐주세요. 제발 그들이 저에게 상처 주는 것을 멈추게 해주세요.”

남들의 변화를 통해서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과연 주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사실 조금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이 담긴 기도는 하느님의 모상보다 자신들의 모상으로 상대방을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사람 안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의도하신 뜻을 찾으려고 먼저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다고, 내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는 이유로 바뀌길 원한다면 결국 하느님 모상이 아니라 내 모상대로 상대방을 만들려는 것이기 아닐까요? 

이처럼 내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뜻보다는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뜻을 좇는데 더 집중한다면 우리의 기도가 “주님, 그들을 변화시켜 주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소원이 있다면서 들어달라고 말합니다. 그 소원은 주님의 나라가 설 때 아들 중 하나는 예수님 오른편에 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불쾌하게 여깁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들도 그 자리를 탐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치맛바람을 일으켜서 선수 쳤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는 이 세상 죽음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얻어야 할 것임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시려는 잔을 자신들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고, 다른 제자들도 자신들도 얻어야 할 자리를 뺏길 것 같다는 생각에 불쾌해했던 것입니다. 이 모두가 세상에서 보여주는 어떤 명예나 지위를 얻으려는 욕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을 보이지 않고 경쟁과 질투와 다툼만이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청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청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다른 이들의 변화를 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모두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있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변화를 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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