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님께서 배가 나와서 걱정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살짝 배가 나온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뚱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딱 보기 좋은데요?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배가 나오면 사람들이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볼 것 아냐?”
배 나온 사람이 게으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저만의 문제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배가 나온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또 어떤 분은 차가 낡아서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 같다며 차를 바꾼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자신의 생각일 뿐이지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글쎄 바짓가랑이가 터지는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모임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모임 내내 바짓가랑이에 온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나서 친한 분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그분께서는 깜짝 놀라면서 “계속 신부님 곁에 있었는데도 저는 몰랐어요.”라고 하십니다. 하긴 누가 저만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아마도 바로 옆에 있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의 이목에만 신경 쓰면서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우가 아닙니다. 이는 관객들 앞에서 굳이 연기하는 배우처럼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주님께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야말로 진짜의 나로 사는 비결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고 하시지요. 그물 안에서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처럼, 의인은 하늘 나라로 악인은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의인과 악인의 구별은 과연 누가 할까요?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며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판단은 오로지 한 분 바로 주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 쓰면서 사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전혀 내 자신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로지 가장 중요한 판단을 하시면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주실 주님께 잘 보여야 하고, 그래서 의인으로 뽑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잘 보이는 방법은 살을 빼고 멋진 차를 타는 등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만이 가장 잘 보이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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