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사람들 사이에 유럽의 체코가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체코가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사람들이 체코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한 자매님께서 제게 “신부님, 체코 가본 적 있으세요?”라고 묻습니다.
강의 때문에, 그리고 교포 사목을 하는 신부님 방문을 위해 세 번 가봤다고 대답을 했더니, “카프카의 생가도 다녀오셨겠네요.”라고 다시 묻습니다. 저는 그 생가 앞을 지나가기는 했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말하니 곧바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체코까지 가셨는데, 카프카의 생가에 안 가보셨어요? 신부님 책 좋아하시잖아요.”
사실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쓴 글을 읽지 않으면서 그의 생가를 직접 가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 속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떠올려집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한 간호사가 다친 병사를 돌보는데 그의 고통이 너무 큰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강력한 진통제로 사용되던 모르핀이 다 떨어져서 그의 고통을 줄여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사기에 식염수를 넣어 고통받고 있는 병사에게 투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아주 강력한 약이니까 곧 좋아질 거예요.”
거짓말같이 이 병사는 고통에서 벗어났고 상태도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 효과를 플라세보 효과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간호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병의 치료에 효과를 봤다는 것입니다.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는 예수님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바리사이 몇 사람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분개하며 예수님께 따집니다. 그 단순한 행동을 추수와 타작을 했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안식일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인간을 위해 쉼의 시간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이 시간에 온전히 하느님께 나 자신을 사랑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은 보지 못하고 그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율법의 준수만을 주장하면서 확대해석하는 당시 종교지도자의 모습이 어쩌면 사랑은 뒤로 미루면서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반대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하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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