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 온 다음 날 새벽에 아침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끌고 도로를 나갔습니다. 밤새 비가 많이 왔는지 이곳저곳에 빗물이 고여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앞으로 가다가도 빗물이 고여있는 곳을 피해서 가거나 아니면 물이 튀지 않도록 속도를 줄여서 고여있는 곳을 조심히 건넜습니다. 물이 튀어서 옷과 자전거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한 대의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면서 고인 물이 물벼락처럼 제게 날아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습니다. 옷도 엉망이 되었고, 자전거도 개흙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지저분함 그 자체입니다. 여기에 제 얼굴도 엉망진창이 되었지요.
짜증과 함께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 저는 신나게 자전거를 탈 수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니 빗물이 고여있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오히려 물을 튀기면서 지나는 재미를 즐기면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워낙 엉망진창 몸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 나빠지지는 않더군요.
사실 우리는 피하려고만 하면서 오히려 더 힘든 순간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냥 즐기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눈치를 보면서 조심에 조심을 더할 뿐입니다. 이 과정 안에서 스스로의 힘듦만 가중됩니다. 즐긴다는 것은 어쩌면 내 몸을 완전히 내어주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습니다. 주님께 우리를 완전히 맡기면 편안함과 함께 큰 기쁨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보다는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지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는데 더 큰 관심이 있기에 주님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한 과부의 외아들을 다시 살려주십니다. 과부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는 하느님을 찬양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찬양하고 감사를 드렸던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님께 푹 안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이 순간을 즐길 수가 있으며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닌 세상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못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