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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28 조회수 : 372

어린아이들이 함께 놀다가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뺨을 때렸습니다. 이렇게 뺨을 맞았을 때의 반응은 세 가지 경우가 있겠지요. 첫 번째는 때린 아이의 뺨을 똑같이 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부여잡고 울면서 떠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뺨을 맞은 이유를 냉정히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세 번째 반응입니다. 뺨을 맞은 이유를 분석하다 보면 당연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반응을 따릅니다. 내가 당한 만큼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다면서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면서 때린 사람에 대한 불평불만만 가득합니다.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이 마음만 괴로워집니다. 

이렇게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세 번째가 아닌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고릅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의 상황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미리 예고하십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이를 미리 준비시키고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도록 미리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반응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 그 말씀에 관해 묻는 것조차 두려워 침묵하고 말지요. 

지금까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만 보아왔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영원하리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영광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제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앞선 이야기의 세 번째 선택이 아니라, 두 번째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묻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면, 주님의 뜻을 거부하게 되고 주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데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따져보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밝은 미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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