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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09 조회수 : 367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누구는 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하지만, 저의 경우는 책이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졸거나 잠들 때가 많지만, 책을 볼 때는 아주 지루한 책이라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 만해도 독서의 맛을 잘 몰랐습니다. 따분하기만 했고,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가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책 없이는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의 경험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 이렇게 저렇게 좋은 점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저의 책에 대한 경험이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특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채칼에 손이 베인 적이 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채칼에 손이 베이면 아프겠지?’라고 막연한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그 고통을 겪는 것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직접 경험을 하고 나서는 얼마나 아픈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그 뒤 더욱더 조심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하지 않기에 모르는 것입니다.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만 그럴까요? 우리의 믿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우가 “신부님, 세례를 받았음에도 전혀 느끼는 것이 없어요.”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당연합니다. 믿음을 키우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곧바로 우리가 매 미사 때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이 기도는 당시의 유다인들이 의무적으로 바치는 기도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느님과 우리의 간격을 좁혀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멀리에 계신 분으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아주 가까이 계신 아버지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냥 알아서 잘 되게 해주세요.’라는 막연한 기도를 바치고, 세상일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하느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직접 체험해야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고, 이 힘으로 세상을 더욱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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