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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22 조회수 : 321

저는 책을 애지중지 여기면서 보는 스타일입니다. 보는 책에 북 커버를 씌우고, 책에 밑줄은 물론이고 어떤 낙서도 하지 않습니다. 책을 접어서 표시한다는 것도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부분에는 북 클립으로 표시를 하고, 메모할 일이 있으면 책에 직접 하지 않고 독서 노트를 책 옆에 두고서 메모합니다. 그래서인지 다 읽은 책이지만 완전히 새 책처럼 보입니다. 어떤 분은 책이 너무 새 책 같다면서 “신부님, 정말로 읽은 것 맞아요?”라고 묻기도 합니다.

사실 책에 자기 생각을 남겨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어느 한 부분에 밑줄이 그어 있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그 밑줄에 눈이 가게 되었고 그 내용을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왜 밑줄을 그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별 내용 아닌 것에 그어 있는 밑줄 때문에 괜히 시간 낭비만 했습니다.

책에 밑줄이나 메모를 할 때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 역시 그 밑줄이나 메모를 보게 되면 그냥 넘어갈 부분도 다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밑줄이나 메모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의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남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때가 참으로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소리를 키워서 힘차게 주장하는 것뿐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는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은연중에 남들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말뿐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남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을 그토록 강조하신 예수님께서 유일하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장면입니다. 성전이란 장사치의 소굴이 아니라 거룩한 집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세속적인 교환 행위가 이루어지면서 하느님의 뜻과 거리가 먼 행동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소외되고 하느님의 돈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문제는 당시의 사람들이 이렇게 장사하고 또 비리를 저지르는 행위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쳤던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장사하는 곳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뜻과 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똑같지 않을까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모범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심을 내세우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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