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불행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아마 많은 분이 곧바로 ‘행복’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 사전을 보다가 불행의 반대말에 더 가까운 단어는 ‘다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긴 이런 관용구가 있지 않습니까?
‘불행 중 다행이다.’
‘다행’이라는 단어의 뜻은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불행과 반대말이 될까요? 사실 우리는 불행을 내 뜻대로 되지 못했을 때, 자신이 가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불행은 그것이 아닙니다. ‘뜻밖에 일이 잘되지 않아서 운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사실 ‘다행’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내 생각과 달리 뜻밖의 경험으로 일이 잘 풀리는 운 좋은 날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따라서 무조건 불행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불행의 기준을 잘못 세우고 있는 ‘나’ 탓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편이 되어주시는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정말로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선을 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두루 다니셨습니다. 그분은 병자들이 당신께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에 관한 복음과 그들의 병 치유라는 두 가지 축복을 가지고 몸소 서둘러 그들에게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재난과 혼란이 그들을 괴롭혀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만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가엾은 마음이 드셨을까요?
강압된 통치로 인한 고통, 자연재해를 통한 고통 등으로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그래서 일상 삶 안에서의 기쁨을 깨닫지 못하는 것, 여기에 율법의 짐까지 더해져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성령의 보호 아래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목자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명하시지요.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행복에 대한 나의 기준을 다시 세워봐야 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한 불행보다 주님과 함께 하는 참 행복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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