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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5일 _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15 조회수 : 321

2019. 12. 15 대림 제3주일


마태오 11,2-11 (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시다,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


그때에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새 세상을 맘껏 기뻐합시다 >


오늘은 대림 제3주일입니다. 일명 ‘기뻐하여라(Gaudete)’ 주일로, 또 장미주일로 부르기도 합니다. 기쁨 가득할 때 얼굴도 홍조를 띠듯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쁨을 상징하는 장미색 제의를 입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 12,8)는 말씀에 따라 1984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지내며,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따라 자선, 곧 가짐이 아니라 베풂의 기쁨을 누리자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합니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오심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던 예언자 이사야는 이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이사 35,10). 또한 제2독서에서 들었던 야고보서의 저자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의 때가 곧 오리라고 격려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 5,7-9).


누구보다도 오시는 주님을 갈망하던 사람은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던 요한은 정의를 외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한은 그곳에서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예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온 삶으로 준비하던 주님을 죽기 전에 뵙고픈 마음에 하루하루 초조함에 지쳐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을 통해서 요한에게 바로 당신이 오기로 되어 있는 분이라고 답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2-4).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써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 곧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젖힌 새 세상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이 본 것을 전해 들었을 것이고, 주님께서 오셨음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한의 기쁨은 곧 우리의 기쁨이어야 하고, 요한의 제자들이 본 것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기 이 미사 안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본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제단 위 커다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봅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 무감각하고, 때로는 제 살기 위해서 스스럼없이 다른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삶의 지혜가 되어 버린 이 낡은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죽으심으로써 새 세상으로 만드십니다. 성체와 성혈로 기꺼이 먹히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사람다운 삶을 빼앗기고 쓰러져가는 가난한 이들을 못 본 척하고, 모두가 제 배 채우기에 급급하다 못해, 급기야 제 배를 채우려 다른 이들을 잡아먹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먹고 온전히 살라고 성체로 먹히심으로써 새 세상으로 만드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봅니다. 아무런 차별도 없고, 어떠한 갈림도 없이 오직 순결한 믿음으로 하느님을 향해 한 길을 걷는 형제자매들을 봅니다. 억압과 착취, 불평등과 차별,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살맛 잃은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곱게 모으시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형제요 자매로 삼으심으로써 세 세상을 만드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미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새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새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을 맛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맘껏 기뻐합시다. 맘껏 즐깁시다. 낡은 세상 한가운데서 새 세상을, 사람 살기 힘든 세상 한가운데서 사람 사는 세상을, 살맛나지 않는 세상 한가운데서 살맛나는 세상을 맘껏 누립시다. 그러나 단지 지금여기에 머물지 맙시다. 이 미사 안에서만 머물지 맙시다. 이 성당 안에서만 누리지 맙시다. 우리의 이 기쁨은 단지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져야합니다. 바로 이것이 굳이 척박한 이 세상에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로 오시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주님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격스러운 성탄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노래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작고 약하고 가난한 벗들의 따뜻한 곁이 되어주면서.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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