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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05 조회수 : 279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오늘의 전례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로서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그 백성들을 ‘불멸의 신적 영광’에 참여시켜 ‘새롭게 하심’으로써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심을 기념하고 있다. 
 
제1독서: 이사 60,1-6: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의 유배생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이 폐허로 변한 것에 상심할 수도 있는 것을 위로하기 위해 새 예루살렘의 찬란한 ‘광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예루살렘이 모든 민족들을 불러 모으고, 값진 보물을 가지고 모여들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은 온 세상의 영적인 수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1독서에서의 핵심적인 말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빛’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빛’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자체의 빛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빛이다.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1절).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주님의 빛으로 싸여 모든 민족들을 부르게 된다(3절). 
 
복음: 마태 2,1-12: 동방박사들의 경배 
 
오늘 복음에서 박사들은 이상한 ‘별’의 인도를 받아 주님께 ‘경배하러’ 멀리서 왔다가 그들을 감싸고 그들에게 스며들었던 그 ‘빛’의 전달자가 되어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는 복음은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티나 동쪽(1절)에 있는 여러 지방에서 왔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이에 대한 정확한 것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당신 자신에 대한 ‘자기입증’의 능력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현존’ 자체만으로도 인간들을 당신께로 끌어당기신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여기서의 주인공은 그 이상한 ‘별’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박사들이 헤로데 왕에게 말하였다(2절). 그런데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보이지 않는다. 박사들이 다시 베들레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그 별이 다시 나타나 인도하고 있다(9-10절).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그들을 찾아 나서신다. 바로 그분이 ‘빛’이시고 빛은 자신을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성 아우구스티노). 태양은 수평선에 떠오르는 것만으로 땅을 비추고 사람들을 광채로 감쌀 수 있다. 구름이 방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킴으로써 베푸신 구원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렸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2절)에게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스도의 이러한 극적인 상황을 예고하는 것이다. 즉 ‘멀리 있는 사람들’이 메시아를 찾아 나서고, 그 분이 어린 아기였음에도 메시아이심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 즉 포악한 군주와 더불어 ‘술렁이는’ 예루살렘으로 표현되는 유다인들은 그를 무시하고 적대시하고 더 나아가 그를 없앨 음모를 꾀한다. 박사들에게 부탁하는 헤로데의 말이나(8절), 뒤이어 나오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학살’(마태 2,16-18)은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로써 믿음의 새 백성이 낡은 이스라엘을 대신하고, 교회가 회당의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 하느님 앞에 중요한 것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며,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분의 다양한 ‘징표’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별’도 하나의 ‘징표’였다. 그 징표를 오직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기적은 그들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 ‘내면’에서 일어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당신 자신에 대한 증거’를 주신다. 교회를 통해서이다. 교회의 모든 힘은 믿음의 강한 ‘광채’에 있다. 믿음의 광채를 통해 교회도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시는’ 주님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이제 여기서 새 예루살렘인 교회의 사명이 드러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라는 ‘빛’을 받아들여 그 빛을 모든 사람들에게 밝게 비추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그분의 사랑, 그분의 형제애, 자신을 내어주고 남에게 봉사하는 그분의 능력이 요구하는 바를 매순간순간에 실현시켜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에 교회는 그 자체가 자기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기쁜 ‘선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교회는 ‘빛’에 의해 동화된 믿는 이들의 공동체로서 바로 주님의 ‘공현’이 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갔을’(12절) 때 분명히 했던 것처럼, 형제들에게 그 ‘별’의 찬란한 빛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눈과 마음속에 그 빛을 먼저 간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공현이란, 구원의 빛이신 주님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신비를 말한다. 이제 주님의 공현의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빛을 우리 안에 간직하고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드러나도록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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