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가 더 좋았다며 현재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어떤 점이 지금보다 더 좋았냐고 물으면 “정이 넘쳤다.”라는 대답입니다. 그 누구도 당시의 가난, 엄청난 노동 강도를 두고서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문명의 발달이 지금보다 떨어진 것을 두고도 좋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딱 하나, 사람 간의 ‘정’이 넘치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좋았음을 말합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로 좋을까요? 자동차를 운전하시는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차를 바꿀 때 더 높은 사양으로는 바꿀 수 있어도, 낮은 사양으로는 차를 바꾸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이기들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까요?
돌아가서는 안 될 만큼 물질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때가 좋았어.”라는 푸념을 하지 않을까요? 지금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되면 될 것입니다. 그 누구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정’을 나 자신부터 나눠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받고 싶은 ‘정’을 나부터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을 나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보다는 “지금이 좋아.”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이 ‘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이 아닌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사라져서 계속 과거만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고 있었지요. 이 모습에 바리사이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즉,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밀 이삭을 뜯고 있는 것이 왜 잘못일까요? 잘못이 없는 것 같지만, 그들은 밀 이삭 뜯는 것을 추수하는 ‘일’로 여긴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확대해석해서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사라지고 맙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린 마음과 넓은 마음으로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이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이 좋아”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세상이 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