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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9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2-09 조회수 : 292

2월 9일 [연중 제5주일] 

작은 희망의 등불을 들고
 
언젠가 제가 지독한 위장병에 걸려서 고생하던 때였습니다.
담당 의사는 제게 음식을 짜고 맵게 먹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당장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분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소금이나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심심한 음식만 먹게 됐습니다.
 
거의 매끼니를 멀건 흰죽에다 시금치, 콩나물무침 등, 자극성이 전혀 없는 반찬들만 먹었는데 정말이지 그것보다 더 큰 고역은 없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저는 소금의 소중함이랄까 위력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육개장의 그 얼큰하고 개운한 맛, 설렁탕의 그 은은한 맛, 그 기본은 다름이 아니라 소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금을 치지 않고 찐 계란을 드셔본 적이 있으십니까?
소금 없이 찐 계란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했습니다.
얼마나 먹기가 팍팍한지 모릅니다.
 
소금은 음식에 녹아 스며들어 전혀 보이지는 않지만 조미료 중 조미료입니다.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제맛이 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올곧고 청렴한 삶을 통해서 악과 부패에서 세상을 정화시키는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꽃이나 열매이기보다는 뿌리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한줄기 구원의 빛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덤프트럭 운전기사였던 남편 부주의로 풍비박산이 난 한 가정을 알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가난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지나친 욕심이 불행의 발단이었습니다.
 
하루를 쉬었어야 했는데…. 피로 누적은 졸음운전과 중앙선 침범으로 이어졌고,
9시 뉴스에서 자주 듣는 표현인 '마주 오는 승용차와 정면충돌'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모든 책임을 지고 '담장 안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사고 충격으로 평소에도 병약했던 아내는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신세가 됐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동네에는 딱한 사람 보면 밤잠을 못 이루는 '해결사 수녀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수녀님은 즉시 3단계에 걸친 조치를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1단계로 수녀님은 근처 종합병원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있는' 사람 사무실로 돌격해 들어가셔서 그 자리에서 '오늘 즉시 입원'이라는 담판을 지으셨습니다.
 
제2단계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당장 아이들 받아들일 자리가 없다고, 보육사들 의견도 좀 들어봐야 한다"고 사정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셨습니다. 
 
기어이 아이들을 제게 맡겨놓고 휑하니 달아나 버리셨습니다.
일단 큰불을 끄고 한숨을 돌리신 수녀님은
 
제3단계로 신자들을 이끌고 남편이 수감돼 있는 교도소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의와 낙담으로 거의 폐인이 되어가고 있는 그 남편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솔직히 수녀님의 지나친 '밀어붙이기'식 일처리 방식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녀님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는 그 마음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수녀님은 사고로 암흑의 한 가운데 놓여 있던 그 가정에 진정 '한줄기 구원의 빛'이셨습니다.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짙은 회색빛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작은 희망의 등불을 하나씩 손에 들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한 실천신학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우리 가슴을 쓰리게 만들지만, 수천 번 생각해도 옳은 말씀입니다.
그분 말씀이 이번 한 주간 우리들 삶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만, 다른 무엇에 앞서 아직도 부지기수로 외국으로 건너가는 우리의 어린 핏줄들을 위해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초대형 성당이나 예배당을 짓고 대대적 사목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 이 땅의 수많은 신부님, 목사님, 장로님들이
그 아이들 한 명씩만 맡아 기르면 안될까요?
 
그리스도를 참으로 숭배하는 길은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금으로 도금한 십자가가 아닌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말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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