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을 읽다가 독일 부부들은 평균적으로 매일 5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눈다는 충격적인 글을 보았습니다. ‘진짜?’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독일보다도 더 일 중심의 사회인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더군다나 과묵한 것이 하나의 미덕처럼 생각되는 우리나라이니 어쩌면 더 대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은퇴 후 더욱더 함께 사는 것을 힘들게 하는 이유가 되고, 이로써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대화가 없는 상태를 사랑이 있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말이든 하려고 할 것이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또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해도 크게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정의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지요.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기도하기 어렵다’라는 고백은 사랑의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부인이 예수님께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사랑 가득하신 예수님께서는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쩌면 커다란 모독이 될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을 ‘강아지’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욕을 당했다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향해서 욕을 퍼부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상황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청을 거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말을 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주님을 향한 믿음이 컸고, 딸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는 외적인 모습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커다란 사랑을 가졌는지, 또 자신을 향한 믿음의 크기를 보실 뿐이었습니다.
주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너무하다 하실 정도로 커다란 고통과 시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는 커다란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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