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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2-28 조회수 : 286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있다면 기억해보십시오. 그 친구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마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공부 잘하는 애?”

제 학창 시절 친구 중에도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서울대에 들어간 친구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만나 이 친구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다들 “아~~ 공부 잘하는 애?”라고 기억합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우연히 이 친구를 만나 술 한잔했던 적이 있습니다. 술을 전혀 못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노는 것을 전혀 못 하고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잘 놀았습니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개그맨처럼 웃긴 말도 많이 했습니다.

단순히 ‘공부 잘하는 애’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 생각에는 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한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이럴진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어떻겠습니까? 단 하나의 모습만 있을까요? 우리의 작은 머리에 하느님을 담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자기 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하고 이러쿵저러쿵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이를 혼인 잔치에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슬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와서 단식하고 슬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혼인 잔치의 주인이 이 땅에 와서 혼인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이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제자들은 왜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요?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스승인 세례자 요한의 경쟁자 정도로 봤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이 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인간과 똑같은 육체를 취해서 오신 것은 물론이고, 화려한 궁전이 아닌 초라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이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것은 우리 역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을 뛰어넘는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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