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한 신부님들과 함께 제주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신기한 것이 많은 박물관이 새롭게 개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신부들에게 이곳에 한 번 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제주도의 많은 박물관 중에 괜찮은 곳이 하나도 없다면서 가지 말자는 신부도 있었지만, 저의 강한 주장으로 박물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입장료가 약간 비싸기는 했지만, 신기한 것들이 참으로 많았고 그래서 제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반대했던 신부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애들이나 오는 곳이네. 특별히 볼 것도 없는데 아깝게 돈 내고 이런 데를 온 거야?”
볼 것 없다고 또 신기하지 않다고 단정을 하니 자신의 눈에 제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 아깝다고 말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신기하다고 그래서 볼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제게는 돈이 전혀 아깝지가 않더군요.
단정을 짓는 순간에 보이는 것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삶이 뻔하다고 바라보면 뻔한 모습만 보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고 놀라운 삶으로 바라보면 그런 모습이 보이면서 신나게 삶을 즐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단정을 지으면서 좁은 마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요한이 증언했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직접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더구나 유다인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에서도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철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인간의 부족하고 나약한 생각을 내세워 단정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에 특별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 안식일 법을 어기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당시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위선자라고 화를 내는 모습에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보고 싶었던 것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막강한 힘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전혀 바라보지 않으면서, 사람의 영광만을 바라보려 하고 있으니 예수님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려고 한다면,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는 영광만 보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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