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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02 조회수 : 292

거룩히 봉헌해야 할 미사 시간에 웃음을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정성을 들이는 성찬례 순간 때 말이지요. 성체 거양을 하는 순간, 한 꼬마 아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큰 소리로 묻습니다.

“저 아저씨가 뭐 하는 거야? 소꿉장난하는 거야?”

아이의 눈에 저는 아저씨로 보일 뿐이었고, 제가 하는 행동이 소꿉장난으로 비쳤나 봅니다. 모두가 조용한 상태에서 들린 이 목소리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웃었고, 저 역시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우는 재미있는 상황이지만, 종종 미사 중에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미사 중에 그 자리에 편안히 앉아 전화 통화를 하시는 분, 성가를 이상하게 불러 성가 같지 않게 만드시는 분, 맨 앞에 앉아서 가만히 있지 않고 부스럭거리는 분, 미사 중에 자주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시는 분 등등…….

그러나 짜증 자체에 머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내가 미사에 집중하지 못해서 신경 쓰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짜증의 틀에서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만 손해입니다.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 내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이 있으면, 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짜증 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유다인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었겠지요. 세상에 그 누구도 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숨이 멈추는 죽음을 진짜 죽음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의 단순한 통과 과정으로만 보십니다. 진짜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구원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지요.

유다인들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마귀 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혈통 타령을 하면서, 예수님이 아브라함보다 못하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생각과 다름을 ‘틀렸다’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짜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님의 반대편에 설 뿐입니다. 이러한 불신의 마음과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닫힌 마음이 스스로를 증언하시면서 우리 구원의 열쇠를 지니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의 모든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바라보십시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비울수록 더 많이 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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