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매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사가 마치 치러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졸다 깨기를 반복하는 등 성의 없는 미사 봉헌이 이루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미사의 은총을 잘 느끼지 못한 채,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매일 했던 미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삶으로 제 모습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해복구 작업으로 인해 주일미사에 세 번 연속 빠지게 된 것입니다(아마 코로나 19로 인해 요즘 미사를 하지 못하니 여러분들도 그 기분을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세 번 연속 빠지고 나서, 4주째에 참석하게 된 주일미사는 제게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성체에 대한 굶주림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지요. 이제까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까지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은총이고 축복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살았다고 상을 받으러 미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으러 갑니다.”
미사가 길고 짧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론이 재미있고 재미없고 역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내게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아 모실 수 있느냐만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와 이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유다가 나옵니다. 유다는 신심을 가장하며, 자신이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 그분 목숨에 매긴 값보다 향유를 더 값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돈 30닢에 예수님을 넘깁니다. 구약시대 때부터 은은 세켈이라는 단위로 사용했습니다. 1세켈이 은 10g으로 4일 품값인 4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은 30닢은 40세켈로 현재의 화폐단위로 계산하면 1,200만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향유는 3백 데나리온. 바로 3억 이상의 가치입니다.
마리아는 3억 이상의 향유를 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귀하게 여겼고, 유다는 1,200만 원에 기꺼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유다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섬기는 일을 제쳐 놓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즉, 예수님이 먼저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다른 것이 늘 먼저는 아니었을까요? 세상 것을 더 값진 것으로 여기면서,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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