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후회합니다. 그렇다면 이 후회는 언제 하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 갖게 되는 감정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충실한 사람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떤 청년이 자신의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어서 힘들다는 말을 제게 합니다. 당연한 사랑인 줄로만 알고 여자 친구에게 소홀했었음을 그래서 이별 통보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여자 친구에게 충실하게 해 줄 것이라며 후회합니다. 사랑의 관계라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만났던 어떤 자매님도 생각납니다. 이분은 암 말기 판정을 받고서 자기 삶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습니다. 병원에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제까지 사는 것이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했고 봉사 한 번 하지 못했다면서 왜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합니다.
고해성사를 받은 뒤, 자기 생의 마지막을 정말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픈 환자들에게 말도 건네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왔습니다. 본인도 죽을 만큼 아팠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가는 마지막 순간에 아주 편안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했기에 후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 만찬 성목요일인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지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십니다. 심지어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의 발까지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들 사이의 구분과 분열과 불화를 없애는 겸손을 가르치고자 스스로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반석으로 세워주신 베드로는 이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의 친교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에 주인의 시중에 깜짝 놀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는 말에 더 강력하게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겸손의 모습이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받으려는 욕심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진정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은 자신을 높이는 삶이 아닙니다. 또 많은 것을 갖는 것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보여 주신 겸손의 삶, 그리고 교만의 올가미를 과감하게 풀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지금을 충실하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으며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충실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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