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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11 조회수 : 334

4월 11일 [파스카 성야] 
 
마태오 28,1-10 
 
실의와 좌절로 무거웠던 발걸음이 아니라 기쁨과 설렘으로 ‘통통’ 튀는 가벼운 발걸음! 
 
성금요일 골고타 언덕 위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참혹한 사건을 십자가 바로 아래서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 그 트라우마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목숨 바쳐 사랑했던 주님, 자신들의 인생 전체와 운명까지 걸며 따랐던 주님의 참혹한 죽음 광경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던 두 여인은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새하얗게 밤을 지샌 여인들은 여명이 밝아오자마자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머릿 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 서둘러 수습한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훼손시키지는 않았을까?
혹시라도 누군가가 탈취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무덤 앞에 도착한 두 여인 앞에 경천동지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축을 흔드는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천사들은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큰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오 복음 28장 6절) 
 
천사의 등장과 메시지 앞에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또 다시 제자들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 무덤으로 오던 발걸음과는 크게 대조가 되는 발걸음입니다.
실의와 좌절로 무거웠던 발걸음이 아니라 기쁨과 설렘으로 ‘통통’ 튀는 가벼운 발걸음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메시지만으로도 감지덕지했던 두 여인 앞에
더 은혜로운 대 사건이 한 가지 더 발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최초로 두 여인 앞으로 마주 다가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두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다가가 엎드립니다.
그분의 발을 잡고 절합니다.
‘발을 잡고 절하는 행위’는 되찾은 주님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세 가지 말씀을 건네십니다.
1. 평안하냐? 바꿔 말하면 너희에게 평화를 빈다!
2. 두려워하지 마라!
3. 내 부활이 증인이 되어다오! 
 
쉼 없이 흔들리는 근심과 걱정 투성이인 이 세상이지만, 내가 폭력과 죽음을 이겼다.
그러니 평안하거라. 너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겪는 갖은 두려움의 끝은 죽음이 아니냐?
그런데 보아라! 내가 폭력과 죽음을 이겼다. 그러니 두려워 말거라.
평안하거라. 앞으로는 걱정하고 근심하기보다는 내 부활의 생생한 목격 증인이 되어다오. 
 
은혜롭게도 주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여인들의 기쁨과 설렘을 묵상합니다.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먼저 찾아주시다니!
이 얼마나 큰 영광이요 은총입니까? 
 
여인들이 주님 부활 최초 목격 증인인 된 이유는?
주님을 향한 가장 큰 사랑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들, 사도들보더 훨씬 더 컸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들이 열렬한 사랑을 기꺼이 받으시고, 보답하신 것입니다. 
 
다시금 맞이한 부활성야입니다.
다들 여인들처럼 예수님 부활을 목격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작은 부활 체험이라도 해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뿐입니다.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활! 파스카! 그에 걸맞게 건너가는 것입니다.
죽음같은 삶에서 참 삶에로, 절망적 삶에서 희망적인 삶에로, 미움의 삶에서 사랑의 삶으로, 분노의 삶에서 용서의 삶에로...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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