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집이 이사 가서 다니던 학교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은 너무나 어색했고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저를 보셨는지, 담임선생님께서는 늘 관심을 써주셨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덕에 학교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많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하는 날, 펑펑 울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데도, 헤어짐 그 자체가 너무나 슬펐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명연이는 산수와 과학을 잘하니까 커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 거야.”
이 말씀을 들은 뒤, 제게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은 산수와 과학이 되었습니다. 좋아하던 선생님이 인정해주신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처럼 과학자가 아니라 이렇게 신부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 뒤로 선생님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얼굴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길에서 마주쳐도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일이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선생님의 목소리입니다. 제게 힘을 주셨던 목소리, 따뜻한 손길이 중년에 들어선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이 무덤 안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사랑을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다시 한번 무덤 안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사랑하기에 무덤까지 찾아간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의심하는 마음으로는 에수님의 부활을 알아보는 눈이 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마리아는 비록 의심의 마음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라뿌니(스승님)”라고 외치게 됩니다.
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지금 “짠~~”하고 직접 나타나셔도 우리는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죄로 얼룩지어져 있고, 일상 안에서 많은 의심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마리아처럼 “라뿌니”라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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