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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17 조회수 : 367

4월 17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사도행전 4,1-12
요한 21,1-14 
 
실패의 밤을 건너온 우리에게 건네시는 주님 위로의 말씀, 와서 아침을 먹어라!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있다 보면 꼭 그런 사람 있습니다.
제발 그냥 좀 지나가주면 좋겠는데, 꼭 물어봅니다.  
 
“많이 잡으셨어요?” “뭐 좀 잡히나요?”
어떤 분은 더 사람을 난감하게 만듭니다.
잡은 고기를 가둬놓은 망까지 들어 쳐다봅니다. 
 
큰 놈으로 몇 마리 건진 날은 어깨가 으쓱하지만, 피라미 새끼 한 마리 못 건진 날은 창피하기도 하고, 그러는 사람들 보면 은근히 화까지 납니다.
제자들 심정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밤새 티베리아스 호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단 한 마리 못 잡았습니다.
말을 건넬 힘도 없어 다들 묵묵히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저 멀리서 누군가 손나팔을 모아 외칩니다.
“애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제자들 심기는 더 불편해졌겠지요.
“젠장, 불난데 부채질이야 뭐야? 저 사람은 왜 신새벽부터 나타나서 남의 속을 긁는 거야,
도대체 저 양반 뭐 하는 사람이지?”  
 
그러나 제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애써 억누르며 대답합니다.
“못잡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포인트를 딱 잡아주시면서 조언을 건네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제자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습니다. 
 
‘저 사람이 지금 누굴 놀리나? 우리는 이 바닥에서만 경력이 30년인 전문직 어부들이야!
누가 누구를 가르키고 있어 정말!’그러나 포스와 위엄이 잔뜩 느껴지는 그분의 말씀에 압도된 제자들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거짓말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잡혔던지, 그물이 터져나갈 정도였습니다.
그제야 눈치빠른 요한 사도가 알아차렸습니다.
베드로에게 보고를 합니다. “주님이십니다.” 
 
잡힌 물고기는 총 153마리였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에 따르면 고대 자연과학자들은 세상 모든 물고기의 종류를 153가지라고 여겼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그물 안으로 총집합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징표가
그물 속에 든 153마리의 고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힌 물고기를 몇마리 갖고 오라고 하시고는 손수 숯불을 피우셔서
노릇노릇 맛있게 구으시고, 빵도 꺼내놓으시고는 외치십니다.
“와서 아침을 들라.”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자상하고 따뜻한 성당오빠, 낚시오빠 인증입니다.
참담한 실패의 밤을 보낸 허기진 제자들 앞에 손수 빵과 물고기를 대령하시는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날 새벽 티베리아스 호숫가 제자들의 마음은 착찹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늘처럼 믿었던 스승님께서 그리도 무기력하고 끔찍하게 세상을 떠나신후, 제자들은 삶의 의미요 기둥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돌아버리겠다는 생각에, 몸이라도 좀 움직이면 나을까 싶어, 야간 작업을 나간 것입니다. 
 
고기라도 넉넉히 잡혀주었다면, 매운탕이라도 끓여놓고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쓰라린 심정을 달랠 수 있었을텐데, 그날 따라 단 한마리도 못잡았습니다.  
 
뭘해도 안되는 자신들의 처지가 한심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해서, 큰 상심에 빠져있는 제자들 사이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스승님의 부재상태에서 임재상태로 상황이 전환되자 우울했던 제자단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던 밤 바다는 어두웠던 실패의 밤이었지만, 날이 밝아오면서 이른 아침의 신선함 속에 주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주님의 현존과 부재 사이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주님께서 우리 내면에, 우리 공동체 안에 부재하실 때 풍기는 분위기는 절망과 낙담,
우울함과 나약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활발히 현존하실 때 풍기는 분위기는 기쁨과 희망, 따스함과 풍요로움, 강한 생명력과 낙천성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절망과 시련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손수 맛갈지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도 실패의 밤을 지새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다정한 위로의 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고수해온 낡은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계명을 선택하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이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 속에 새로운 판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헛된 망상의 그물을 거두어들이고 주님께서 건네시는 새로운 그물을 펼칠때
놀라운 사랑의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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