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4ㄱ.36-41
베드로1 2,20ㄴ-25
요한 10,1-10
유일한 착한 목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성소주일에 어울리게 요한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착한 목자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일한 착한 목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저희 같은 사목자들은 그저 유일한 착한 목자 예수님의 협조자일 따름입니다.
이스라엘 전통 안에서 목자는 구원자를 가리켰습니다.
시편 23장은 참목자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편 23장 1~4절)
한편 이사야 예언자가 강조하는 착한 목자상은 이렇습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이사야서 40장 10~11절)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목자’라는 표현을 통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자신들을 구원하시는지, 어떻게 따뜻하고 세심하게 보살피시는지를 묘사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런 착한 목자상을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함을 통해 그분께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실현하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복음서 전체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양떼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한 목자인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착한 목자라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붙여서는 안될 고귀한 수식어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감히 목자 운운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언제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가엾은 양 한 마리일 뿐입니다.
새벽안개가 걷히고 풀잎 끝에 아침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아침, 간단하게 요기를 끝낸 목자는 양들을 깨우러 우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목자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양들이기에 한 녀석 한 녀석이 다 소중합니다.
밤새 잘 잤는지, 아픈 녀석을 없는지 한 마리 한 마리 얼굴을 보며 건강 상태를 확인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야 수 백 마리 양들이 다 비슷비슷, 그 녀석이 그 녀석 같겠지만,
매일 매 순간 양떼들과 동고동락하는 목자는 한 마리 한 마리 다 소중하고 다른 녀석들과 구별이 가능합니다.
어떤 목자는 모든 양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양들도 아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중에는 게으른 녀석, 늘 뒤로 빠지는 녀석, 아침 잠이 유난히 많은 녀석, 시들시들 병약한 녀석, 다른 양들을 못살게 구는 녀석...
그래서 목자는 아침부터 밤 되기까지 늘 바쁩니다. 잔소리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 해가 중천에 뜬지 오래다, 이제 그만 자고 빨리 일어나라, 너는 오늘 털이 그게 뭐냐,
이리 와라. 내가 빗어줄게. 거기 구석에 너희 둘, 아침부터 왜 싸우냐?
자 빨리 자리 털고 일어서자. 아침 먹으러 나가야지...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조금이라도 더 잘 먹이기 위해 좋은 풀밭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작은 개울도 건너고 도로도 건너 마침내 도착한 넓은 평원, 가슴이 탁 트일 정도입니다.
멀리 작은 호수 위로 부서지는 아침햇살이 눈부십니다.
목자의 인도한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양들은 정신없이 풀을 뜯기 시작합니다.
양질의 풀을 맛있게 먹어대는 목자의 마음이 훈훈해지고 흐뭇해집니다.
보십시오. 착한 목자의 하루 일상입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내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도 동일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