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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5일 _ 조명연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05 조회수 : 321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한 아이와 짝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 친구는 매우 지저분했고 공부도 못했습니다. 여기에 얼굴에는 거부감이 들 정도의 큰 흉터가 있었지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억지로 짝을 지어주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울면서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선생님은 “이 친구와 짝이 될 사람?”이라며 지원자를 찾으셨습니다. 모두가 싫었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지요. 그때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짝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이 친구가 안타까웠고, 내가 구해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좋은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지저분하고 냄새도 많이 났으며, 공부도 못하는 이 친구와 함께하기가 점점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다른 자리의 친구와 놀았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괴롭힌 것은 아니었지만, 무시했던 것입니다.

철이 들면서 이때의 생각을 하면 제 마음이 아픕니다. 당시 이 친구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겉모습만 보고서 나의 행동을 정당화했던 것입니다.

철없을 때의 일이 이렇게 40년이 넘었음에도 후회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과 반대되는 모든 말과 행동은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율법 학자들은 소위 성경에 대해서는 ‘박사’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어떻게 태어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즉, 다윗의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앎은 인간의 앎일 뿐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앎을 주님께서는 지적하십니다.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지만, 다윗 스스로가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곧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신성으로는 다윗의 주님이 됩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주님을 육에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만 여길 뿐 다윗의 주님이신 하느님이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 못하고, 인성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일조를 하게 되지요.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다른 이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단죄는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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